1212 군사반란, 또는 1212 군사 쿠데타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군사적 권력이 정치적 권력을 억압하고 국민의 민주적 요구를 무시한 전형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이 사건은 1980년 5월 17일에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국 사회와 정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건의 배경
1980년대 초, 한국은 전두환과 같은 군부 세력의 권력 강화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한국 사회는 정치적 공백과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 군부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세력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으며, 전두환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했으며, 이 시위는 점차 확산되어 갔다. 이에 대한 군부의 대응은 강경했으며, 5월 17일, 전두환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광주에 파견하였다.
1212 군사반란의 경위와 사건 순서
1980년 12월 12일
- 오전 10시: 전두환은 군사정권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군 내의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하였다. 전두환은 군부 내에서의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1군사령부를 포함한 주요 군사 기지에 자신의 지지 세력을 배치하였다.
- 오후 2시: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와의 회동을 통해 반란을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때 정승화는 군부 내에서의 전두환의 입지를 약화시키려던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정승화의 지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군부 내의 충성스러운 장성들과 함께 반란을 감행하였다.
- 오후 4시: 전두환은 정승화가 대령들에게 장교단 회의를 소집할 것을 지시하며, 군사반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 회의에서 전두환은 군사 지도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군 내 인사들에 대한 교체를 예고하였다.
- 오후 5시: 전두환은 군사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울의 주요 군부대에 대한 공격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때, 전두환은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승화를 체포하고 반란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였다.
- 밤 8시: 정승화가 체포되면서 군사반란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전두환은 육군 내의 주요 직책을 점령하게 되었다.
사건의 전개와 그 후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그는 1981년 3월 3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의 통치 아래에서 국가의 정치적 환경은 더욱 강압적이 되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시민의 저항은 무자비하게 탄압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 정치의 민주화 요구와 군부 정권의 억압 간의 갈등을 더욱 부각시켰으며, 전두환 정권의 출범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은 이러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였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후세의 평가
1212 군사반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정권의 부정과 억압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진다. 반란을 통해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했지만, 이는 국민의 민주적 요구와 인권을 무시한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요구는 군부 세력의 억압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는 1987년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후세의 평가는 전두환 정권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군사반란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 사건은 군사정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1212 군사반란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으며, 군사정권의 부정과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되고 연구될 것이다.
'그날의 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4.3사건 1947년의 끔찍했던 제주도 대학살의 비극 (0) | 2025.04.03 |
---|---|
천안함 피격사건.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기억과 아직도 이어지는 논쟁. (0) | 2025.03.26 |
이태원 참사 최악의 인재. 그날의 기억과 남겨진 자들의 고통. (4) | 2024.10.29 |
박정희 시해 사건의 경위와 정치적 영향. 권력의 종말과 민주주의의 전환점 (5) | 2024.10.26 |
한미 제네바 기본합의 그 과정과, 의미 그리고 지금 남은것은? (2) | 2024.10.21 |